순대볶음
인류 문명은 다양한 식물과 함께 진화해왔습니다.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시작된 커피의 여정이 15세기 이슬람 수피교도들의 종교의식 도구에서 21세기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상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합니다. 이 글에서는 커피 역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알아보겠습니다.
6~7세기 에티오피아 고원의 목동 칼디가 염소 떼를 따라 산길을 오르내리던 중 우연히 커피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특정 나무의 붉은 열매를 먹은 동물들이 밤새 뛰어다니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그는 스스로 그 열매를 씹어보았고, 머릿속이 선명해지며 피로가 사라지는 체험을 합니다.
현지인들은 이 열매를 '분나'(Bunna)라 불렀으며, 열매를 으깬 뒤 동물 기름과 섞어 에너지바처럼 만들어 소화했습니다.
9세기 이슬람 수피교도들은 야생 커피나무에서 채집한 열매를 '퀴셰르'(Qishr)라 부르며 달인 물을 명상 보조제로 활용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수도자들이 밤새 기도할 때 졸음을 쫓는 신비한 음료로 사용되면서 에티오피아 남부 카파(Kaffa) 지방에서 예멘 모카 항구로의 전파가 가속화되었습니다.
10세기 예멘의 수피교도 알다바니는 최초로 커피 콩을 볶아 분말로 만드는 현대적 추출법을 개발했습니다.
1454년 메카의 무프티(이슬람 법학자)가 '카흐와트 알분'(커피의 아랍어 명칭)을 금지하려 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1세가 1517년 카이로 점령 후 공식 음료로 지정하며 확산을 촉진했습니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1470년부터 모카 항구를 유일한 수출창구로 지정, 생두 반출을 사형에 처할 만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1600년 인도 순례자 바바 부단이 허벅지에 숨겨 반출한 7알의 씨앗이 마이소르 지역에서 재배되며 독점 체제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16년 모카 항구에서 밀반출한 묘목을 자바섬에 심어 1711년 첫 수확에 성공, 유럽 공급망을 장악했습니다.
1570년 베네치아 상인들이 오스만 제국에서 가져온 커피는 유럽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1600년 클레멘트 8세 교황은 "이 사탄의 유혹을 맛보라"는 요청에 직접 커피를 시음한 후 "이 진미를 이단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며 공식 인가했습니다.
1645년 베네치아에 문을 연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 '보테가 델 카페'는 지식인들의 토론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영국에서는 1652년 파스쿠아 로제 커피하우스가 개점한 이후 50년간 3,000개소가 넘는 카페가 생겨났습니다.
로이드해상보험, 런던증시, 영국박물관 등 현대적 기관들이 모두 커피하우스 토론에서 태동했으며,
1674년 '커피하우스 반대 여성청원서'에는 "남편들이 카페에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항의가 적혀있었습니다.
1714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네덜란드로부터 받은 커피나무 한 그루를 왕립식물원에 심었고,
해군장교 드 클리외가 1723년 마르티니크섬으로 몰래 반출하며 중남미 재배의 서막을 올렸습니다.
1727년 브라질은 프랑스령 가이아나와의 국경분쟁 중 커피 종자를 외교관의 꽃다발에 숨겨 획득했고,
1800년대 말에는 전 세계 생산량의 75%를 점유했습니다.
1823년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푸르돔이 커피 추출물 제조법을 개발했고,
1901년 일본인 가토 사토리우가 인스턴트 커피 제조특허를 얻으며 제2의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1971년 스타벅스 1호점 개장은 커피를 산업화된 상품에서 제3의 생활공간으로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프랑스 요리사가 내린 커피를 접했으며,
1902년 손탁호텔에서 서양식 커피 제조법이 선보였습니다.
1927년 명동의 '다방 카페베네'는 지식인들의 모임장소로 유명했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 PX에서 공급된 맥스웰 하우스 인스턴트 커피가 대중화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976년 동서식품이 국내 최초로 동결건조 커피 '맥스웰 하우스'를 생산했고,
1999년 이디야커피 1호점을 필두로 프랜차이즈 시대가 열렸습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서울 한강변 카페가 1,200여 개에 달하며 1인당 연간 353잔(2023년 기준)을 소비하는 글로벌 커피 강국으로 도약했습니다.
커피는 종교적 금기를 넘어 계몽주의 사상을 탄생시켰고,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을 유발하며 세계 경제질서를 재편했습니다. 21세기 현재 커피 산업은 1억 명 이상의 생계를 지탱하며 기후변화 대응과 공정무역 논의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